사이버그

그는 수술대 위에서 눈을 떴다. 정확히는, 수술대처럼 보이는 무언가에서. 자신의 주변에 있던 무엇인지도 모를 장치들과 그것의 팔들이 자신의 방향으로 뻗어있는 것이 보였다.

아직 희미하게만 보이는 그의 시선 앞에는 한 남자가 보였다.

"어째서죠?"

막 깨어난 그가 처음 꺼낸 말이었다.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는 그의 태도를 질책하듯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살려준 사람에게 처음 하는 말이 어째서냐는 건 조금 기분이 언짢아지는군."

막 깨어난 남자는 자신의 몸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체온이, 피가 흐르는 감각이, 심장이 뛰는 그 느낌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애초에 전 분명히 살아있어선 안될 텐데요."

분명히 그는 죽었어야 했다. 그 자신이 그걸 원했으니까. 오히려 그는 다시 눈을 떴을 때, 사실 크게 실망했다.

"원래 죽었어야 했지. 하지만 나는 단지 실험체가 필요했을 뿐이고, 그때 자네는 내 눈에 들어왔던 것뿐이야."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 살아나지 않는 게 더 기뻤을 것 같은데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참 의미 없는 일을 하셨네요."

"나에겐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었네. 하지만, 자네는 두 번째 기회를 얻은 거야. 바로 포기하기보단, 조금 더 가치 있게 활용해볼 생각 없나?"

하지만 남자는 너무 차갑고 딱딱해진 자신의 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고. 애초에 이런 고철 몸으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아까 보았던 기계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걸로 절 다시 만든 겁니까? 재밌네요. 뭐 하는 사람이시길래 이런걸 할 수 있는거죠?"

"그냥 일개 박사라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그런 사람이지."

"믿기지가 않는군요. 무명의 박사가 이런 것도 할 줄 안다니, 일부러 이름을 숨기는 거 아닙니까?"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네. 이런 걸 하다 보면 추적하려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말이야. 조용히 살고 있는거지."

"충분히 그렇겠네요. 그래서, 이제 전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제가 원한 건 아니지만, 뭐 그래도 살려주셨으니 대가로 부려먹기라도 하신다거나."

박사는 남자에게 다가와 열쇠 하나를 건네주었다.

"열쇠? 어디에 쓰는 거죠?"

"여기 옆 방 열쇠라네. 거기에 입을 옷과, 큰 가방에 몇 가지 물건이 있을 거야. 그걸 가지고 여길 떠나게."

"그냥 여길 떠나라고요? 전 갑자기 로보트로 변해버리고, 지금 뭘 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는데요."

"자네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었던 게 없나? 아주 오래전에라도 말이야."

남자는 깊이 생각해보았다. 분명 어릴 적에는 희망에 가득 찬 꿈이 하나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강철 수트를 입고 적을 해치우는 히어로를 보면서 꾸었던 꿈. 그땐 어린 마음에 '나는 슈퍼 영웅이 될 거야!' 같은 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겠냐만.

"아무래도 없는 것 같네요. 어차피 여기 있어도 다를 건 없고, 그냥 나가서 떠돌다가 찌그러진 알루미늄 캔 마냥 박살 나서 죽거나 하겠죠."

"..알겠네."

"아무튼,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쇼."

남자는 나가서 옆 방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셔츠와 바지 몇 장이 걸려있는 옷걸이와, 그 밑에는 커다란 검은 가방이 있었다. 옷을 챙겨입고, 가방을 열어보았다.

보통의 사람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별 물건들이 다 들어 있었다. 그 외에도 돈 봉투라든지, 핸드폰이라든지. 그는 가방을 어깨에 들춰 매고는 문밖으로 나섰다.

문득 아까 그 남자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게 생각나서 다시 들어가 볼까 했지만, 이미 인사까지 하고 나온 만큼, 그냥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왔을 땐,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길목이었다. 남자는 그저 정처 없이 길거리를 걸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어쩌면 다시 없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가방 안에 있던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해 보았지만, 저장되지 않은 전화번호일 뿐이었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난번 말했던 거 있잖아. 그거 혹시 얼마나 됐나 싶어서 전화했어."

"누구시죠?"

"네? 아, 잠시만요.. 어? 이 전화번호 맞는데.. 거기 혹시 골드 아닌가요?"

"혹시 그 골드라는 분이 이 핸드폰 주인이셨나요?"

"누구신지?"

"아마 맞다면, 그 골드라는 분이 저한테 이 핸드폰을 주신 것 같은데요."

"그럼 넌… 혹시 나 기억나?"

"뭐라고요?"

"난 기억나. 고등학교 때 넌, 가끔 노트에 히어로를 그리곤 했지."

"당신 누구야."

"넌 성실한 사람이었어. 하지만, 난 네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 몇 년 만에 듣는 고등학교 친구 소식이 사망 소식일 줄 누가 알았겠어."

"너 설마.."

"내가 문자로 주소를 보낼 테니 거기로 와줘. 네 도움이 필요해."

"난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거든?"

"미안해,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줄게."

전화가 끊겼다.

남자는 멍하니 전화가 끊어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이내 주저앉았다. 곧이어,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가 도착했다. 문자에는 한 상가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걱정하지 말고 찾아와, 넌 영웅이 될 수 있어.' 남자는 그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럼에도, 분명 차갑게 식어있을 심장이 다시 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음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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