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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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에서 태어난 백이었다.

깊은 땅속 어딘가, 태양 빛이 닿지 않는 곳.
나는 그 곳에서 눈을 떴다.

그 곳에서 나는 하나가 아닌 수백의 나였다. '우리'는 모두 '나' 였다.
우리, 나의 육체는 온통 흰색으로 칠해졌고, 항상 섬뜩한 거짓 웃음만을 띠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부터, 내가 사는 이 어둠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진실을 찾기 위해, 나는 나를 쌓고 쌓아서, 그 위로 타고 올라갔다.

그렇게 도달한 그곳에는 내 상상보다 더 경이로운 것들이 있었다.
흑과 백뿐인 아래와 달리, 다채로운 색상들이 즐비한 세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처음 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했다.
우리와 형태는 닮았지만, 그들은 더 많은 부분과 더 많은 색이 있었다.

무언가 안에서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들을 본뜬 것이고, 나는 그저 흰색의 인간일 뿐인가?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저들을 본뜬 하찮은 미물일 뿐이라서?

대체 왜, 저들은 각자의 색을 갖고 살아가는 거지?

그제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오직 하나의 '나'가 필요하다.
공통된 색이 아닌, 혼자만의 색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색을 빼앗으면 될 것이다.
좋은 목표를 찾았다.

푸른색의 하늘이 자취를 감추고, 아래서는 볼 수 없던 붉은 져녁놀이 사라졌을 때.
내 위가 아래와 같이 어둠에 잠겼을 때. 바로 지금이 계획을 실행할 때다.

집 문을 따고 들어간다. 내부가 훤히 보인다.
하지만 내가 찾는 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너 지금 어디 숨어있는데?”

아주 고맙게도, 녀석은 내 대답에 응해 주었다.
드디어, 색깔을 찾았다!

붉은색, 눈앞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든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온몸을 타고 오른다.

이제 나는 하얗지 않다. 대신, 눈앞엔 쓰러져 있는 하얀 인간이 보인다.

이제서야 비로소 진실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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