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원 신입 요원의 하루

초상사회를 대략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재단과 연합이라는 두 덩이로 양분되어 있고 그들의 눈을 피해 숨었거나 대립/협력하는 형태로 적당한 크기의 중견 단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 밖에서 소규모 집단들이 산재 되어있는 형태로 구성되어있다. 한반도 또한 그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생 초상 기구가 맞이하게 되는 제일 큰 문제는 기존 단체들의 텃세일 것이다.

우리, 국가초상방재원의 입장에서는 전신기구라고 할만한게 없는 상태에서 생긴 조직이다. 맨바닥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하는데 텃세부터 마주하니 죽을 맛이 한가득이다. 한국의 초상 사회 역사를 귓동냥으로 듣고서는 '너희들 전신으로 중앙정보부 10국이 있지않았냐'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설립 당시부터 그들과 연관성은 없다고 이미 선을 그었고, 설상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폐쇄되기 직전 저지른 대규모 파쇄와 탈주로 남아있는 자료라고는 1도 없고, 있었더라도 이미 재단 손에 넘어갔다. 즉 명분론적이든 실리적이든 중정 10국의 유산이라고 할만한게 쥐똥만큼도 없다는 뜻이다.

그나마 저번 북한 색연필 로켓 건으로 대북 쪽으로 독자적인 조사루트가 뚫린것과 명천구를 인수인계 받아 관리를 하게된 것에 대해 자화자찬하는 분위기지만, 그럼에도 국내 쪽은 여전히 재단이 먼저 캐치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더듬더듬 나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듬더듬 만지고 기록하는 일이 좀 쉽던가. 아예 처음부터 더듬더듬 나아가는 실정이니 일의 양이 폭주하는건 당연한 이야기다. 할 일은 많은데 그 일들을 고스란히 받는 막내들은 어떨까. 하루가 멀다하고 국정원이나 국방부, 경찰로부터 이거 변칙인거 같다고 문의가 들어오면 막내들이 나가서 확인하고 열에 여덟은 허탕치고 들어오면 이미 새벽 4시 찍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재단이 선심쓰듯 인원을 보내줘서 익일 2시 전에 끝나게 되었지만 죽을 맛이란건 여전하지. 그리고 재단으로부터 정보들어오면 그거 정리하는데 한 세월에 그 일 한다고 다른 일을 안 시키는 것도 아니니, 재단으로부터 인수받은 명천구 자료들을 정리하다 문득 과연 내가 요주의 단체랑 교전하다 죽을까 아니면 과로사로 병원가서 사망 판정을 받을까로 고민의 연속인 나날이다.

"어제 야근째고 어디로 가서 뭐했는지 제대로 말 안하면 너의 모가지를 비틀 것이다."

"진정하라고 동기. 이래뵈도 중요 첩보가 들어와서-"

"우리같은 말단이 첩보라 해봐야 또 경찰 쪽에서 자기들이 일단 손 못 대는거 우리한데 떠넘기려고 서류질한거겠지. 너 때문에 내가 오늘 새벽 4시에-"

"일단 들어봐. 독기 좀 빼고."

어제 야근 튄 동기-양수택에게 경의를 담아 한 손에 삼단봉을 뽑아들고 다가가니 급하게 서류를 건네준다. 나는 다른 손으로 서류를 받아들고 삼단봉으로는 그 녀석이 어디로 튀지 못하게 겨누며 서류를 훑어보았다.

"갑자기 두레원은 왜."

"좀 더 봐."

"두레원은 가급적 건들지 않기로 위에서 결정 내렸잖아."

동기는 아무 말하지 않고 그저 계속 읽으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고구마 캐기 체험… 주최자는 두레원 원장에 장소는 원장 소유 농장… 참여자 명단이 있네?"

"전염병 방역에 동참하는 뜻에서 작성한거래."

"이걸 어떻게 손에 넣었냐."

"질병관리청에서 나왔다니까 바로 주더라. 그래서 복사했지. 이름들 쭉 봐봐."

이름?

"구 일한… 호야… 장옥정… 김 철현… 오비단- 잠깐만, 장옥정?"

이 양반 셀레스트 이사진 중 한명 아니었나?

그리고 호야가 이 호야가 맞다면-

"호야 이 이름, 저번 정문 돌파 사건 때 재단 측 자료에 나왔던 사람이잖아."

"'사람'은 아니긴 한데. 어쨌든 이 정도면 중요 정보 아니겠냐."

그냥 중요 정보 정도가 아니다. 그 호야가 맞다면 그동안 접점 자체가 없었던 능구렁이 손의 감시 루트가 뚫리는거고, 장옥정과 동행할 예정으로 적힌 오비단이라는 사람은 방재원 감시 리스트에 올라오지도 않은 이름이다. 김 철현은 첩보실 지나가면서 문득 들은 이름인거 같고. 어쩌면 이 리스트에 올라온 사람들 전부 한반도 초상 사회의 일원일지도 모른다.

"상부에 제출해보려고 했는데 네말대로 상부는 두레원 건드리길 꺼려하니 빠꾸먹을게 분명하잖아. 그냥 요원 개인 차원에서 감시면 선조치 후보고해도 별 탈 없지 않겠냐?"

"근데 이 정도 리스트를 왜 니가 꿀꺽안하고 나한데 주냐?"

"야, 나때문에 니가 야근도 많이하고 그랬으니까 감사의 의미로-"

[후-후- 중앙행정실에서 전파합니다. 양수택 요원. 양수택 요원. 지금 즉시 장비국 3팀으로- 아, 팀장님 마이크 함부로 가져가시면- 야!!! 양수택이!! 니 나한데 파딱 튀어온나!! 2분준다!!!]

"감사는 개뿔이."

"진상 알았으면 그 리스트 들고 꺼져. 난 이만 죽으러 간다."

나 혼자서도 해도 될까-라고 고민이 들었지만 행동은 머리보다 빨랐다. 리스트에 적힌 고구마 체험 날짜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외근을 신청했다.


이동하면서 동기가 준 자료를 검토하던 중에 두레원 원장의 농장 근처에 군부대가 있다는 정보를 보고 헛웃음밖에 안나왔다. 그래, 코앞에 바로 요주의 단체 수장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몰랐던 것이다.

"재단도 몰랐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나… 복장, 장비 문제 없고."

오늘 나는 이 근처에 등산을 나온 등산객이다. 근처 큰 산을 등산하던 중 길인지 아닌지 애매한 경로를 따라 길을 잃고 해매고 해매다가 여기까지 온 상황이다. 만약 들켜도 이 핑계면 충분할 터.

"생각보다 농장이 큰데."

대략 2천평 정도 되는 밭. 그리고 그 40%정도가 고구마 밭으로 이랑들 사이사이에 체험객들이 쉽게 고구마를 캘 수 있도록 베고 남은 고구마 줄거리들이 보였다. 그리고 한켠에 세워진 하우스와 농막. 그 사이에 세워진 차량 5대.

"…조회 안되는 번호들이고."

일단 저 차들 나가면 바로 카메라로 위치추적 신청하면 된다. 저 차의 주인들은 하우스 안에 있는건가? 하우스 내부는 여기서 안보이는데-

"하이고, 여기서 우리 농장 잘보이는구마. 경치 좋지?"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손에 들고있던 카메라를 떨구고 말았다. 급히 뒤를 돌아보니 7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노인이 낫을 들고 주변의 풀을 베며 나를 바라보고있는게 아닌가. 저 사람이 두레원 원장인건가?

"저기가 우리 농장인데, 하우스에 난로가 있거든. 근데 땔감이 없어서 올라왔더니 참한 젊은이가 있네? 무슨 일로 여까지 왔는고?"

"아, 그게… 등산중에 길을 잃어서-"

"등산? 이 근방에 등산할만한 큰산은 태화산밖에 없을틴데…"

당했다. 멀리서 사진이나 찍고 차량추적이나 하면 안걸릴거란 생각에 대충 만든 알리바이를 벌써 저 원장이 간파한거같은데..!

"하이고, 거기부터 여까지 길을 잃어서 왔다고? 고생 많이 했겄네. 그라믄 잠깐 우리 농장에 와서 쉬었다 갈텨? 마실것도 있고 먹을것도 있다."

"아뇨. 괜찮습니다. 도로도 발견했으니 길따라서-"

"전화도 있으니께 거서 전화해서 택시부르면 된다. 그라지말고 와보그라. 올해 농사 다 망했어도 고구마는 맛있게 잘됐다."

그리 말하며 노인은 내 팔을 움켜쥐고서는 그대로 농장으로 끌고간다. 뭔 노인네 힘이 이렇게 쎄?


난로.jpg

이미지 아래에 보여지는 텍스트

보통 일이 틀어지는걸 감안하고 계획을 짜는게 요원이라지만 그 계획이 다 틀어지면 어떻게 되는것인가. 근처에 있던 군부대는 알고보니 이미 이전해서 빈곳이라 지원요청도 못하고 아무리봐도 수상한놈인걸-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노인-두레원 원장의 손녀손자들이 언제쯤 손에 연장을 들까라는 불안감이 반쯤 차오를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방금전에 베어온 불쏘시개용 장작에 불을 붙이고서는 난로에 불을 떼우기 시작했다.

"원래는 오늘 체험오는 손님들 고구마 다 캘때 떼려고 했는데, 날이 추우니께 미리 틀어놨으니 몸 좀 녹혀. 커피주까?"

"아뇨,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에구, 산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배도 고플틴데-"

"배가 고프기는 개뿔. 가방 빵빵한거보니 먹을거 챙겨왔나본데."

뒷편 입구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갈색 빵모자에 검푸른 자켓을 입고 검은 천마스크를 두른 붉은 눈의 여인.

"고구마는 잘됐네, 고구마는."

"거, 저번에 배추도 좋다고 가져갔으면서."

"감자 어딨냐 감자."

"하이고, 우물가에서 누룽지찾는 여우가 여깄네. 아직 심지도 않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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