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라테

인생의 쓴 맛을 보면 커피가 달다고들 한다.

"퉷."

흔히 블랙 기업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3년간 구르다구른 나에겐 같은 블랙이라는 이름을 단 커피가 오히려 더 싫다.
괜시리 폼이라도 잡아보겠다고 자판기에서 무설탕 블랙커피라도 뽑아봤지만, 이 나이먹고 허세는 역시 몸에 맞지 않는다.

변변찮은 스펙도 기술도 없던 사람이니만큼 카페에서 파는 고급 커피건 자판기 커피건 인스턴트 커피건 별 다를 바 없이 느끼지만, 유일하게 회사 블랙 커피 하나만큼은 쓰디 썼다. 유명한 에너지 음료에 들어가는 카페인을 가볍게 비웃을만한 양이라도 들어가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지금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홀로 자판기 하나 뽑아들고 군상짓을 하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면, 간단하다. 회사가 망했다.

"후…"

하루하루에 벌어먹기 바쁜 샐러리맨이야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하지만은, 높으신 분들은 달랐던 모양이다. 파산신청과 퇴직금까지 일사천리와도 같은 속도로 이루어졌고, 나는 오늘도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출근한 뒤에서야 회사가 망한 것을 다시금 깨닫고 텅 빈 사무실에 혼자 남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먹고 있는 궁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어제 받은 대략 애사심이 어쩌고 하는 내용의 겉치레 가득한 문자 하나만으론 실감이 안 난단 말이지.

담배라도 폈으면 분위기라도 내면서 이 기분을 달랬을텐데, 안타깝지만 어릴때부터 모범생의 표준이었던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그래, 나를 포함한 직장인들이 다들 블랙 블랙 해도 이런 부분에 있어선 철저한 회사였다. 일 한 만큼 받는다. 내 통장에 찍혀있는 글자가 그걸 대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잔금: 65,622,215원

월급이 참 많기도 했구나. 쓸 시간도 여유도 없었으니… 이렇게 한 7년만 더 굴렀다면 집이라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워낙 사축과도 같은 생활을 해온 몸이다 보니 생각도 거지같구만.

무작정 거리로 나와보니 분주한 거리가 보인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바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음을 생각하면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와닿기는 개뿔 맛난거나 먹어야지.

그렇지만 8시 조금 넘은 이 시각에 여는 맛집이 있을리가. 결국 돌고돌아 프랜차이즈 카페 한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선 아이스 카페라테 하나에 빨대를 꽂고서 오물거리는 내 신세가 처량하다. 가게만 열려있으면 비싼 초밥집이나 레스토랑을 갔을텐데라고도 생각하면서도 막상 가게 문 앞에서 망설이겠지.

이 돈으로 뭘 할까.

6천만원이라는 돈이 뭐 누구 집 개 이름으로 붙일만한 돈은 아니라지만, 지금같은 시대에 서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없이 부족한 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돈으로는 전세집도 구할 수가 없다.

"에휴…"

대출을 받는다면야 뭐 못 할만한 것도 아니겠지만은, 문제는 내가 이제 백수라는 점이다. 얼어붙은 취업시장이 경력직이라고 다를 것 같은가. 3년정도의 어중간한 경력 가지고선 어디서 명함도 제대로 못 내밀고 다닐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경력 인정도 못받고 신입부터 다시 시작해야할지도 모른다. 대출은 커녕 은행에서 쫓겨나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여기서 끙끙댄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우선적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즐겨보자. 그래, 모처럼 생긴 기회이니 이 참에 해외여행이라도 한 번 갔다 와보자.

초등학교를 들어가서부터 제대로 된 자유로운 영혼을 누려 본 기억이 지난 20년 간 없었던 나로선 이제와서 들어온 일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때 아니면 언제쯤 이런 마지막 일탈을 해보겠는가. 대학생 때도 제대로 해보지못했던 그 흔한 해외여행 한 번 조차도 여태껏 해보지 못했는데.

해외여행은 정했고, 이제 목적지를 정하려는데 주변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낀다. 대학가 근처라 그런지 아침이라 한가했던 곳이 어느샌가 과일 로고 가득한 태블릿과 노트북으로 도배된 허세의 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9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보니 슬슬 대학생들이 들어오는 시간이구만.

자리가 어느새 얼마 남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여전히 여행지를 뒤적거리던 내 옆에도 어느샌가 사람이 앉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화면이 싱가포르에서 출발해서 말레이시아에서 태국 즈음의 어딘가에서 머무를 무렵,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스크롤하던 손을 멈추고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빨려들 것 같은 갈색 눈동자가 먼저 보였다. 무슨 작업 멘트도 아니고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보자마자 느껴지는 생각은 그런 오글거리는 멘트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눈이 빤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괜시리 멋쩍여진 나는 얼굴을 긁적인 채 입을 열었다.

"여행 흥미있어요?"

말 해놓고도 작업 멘트마냥 진부한 레퍼토리가 아닐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지만, 이미 뱉어버린 거 어쩌겠는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 외의 대답이었다.

절레절레.

고개로 간단하게 대답한 그녀는 가느다란 손을 스마트폰을 향해 뻗었다. 그러고선 능숙하게 지도 어플을 조작하여 내가 보고있던 동남아시아에서 다시금 동아시아로 돌아왔다.

"여기로 가야 해요."

그녀는 마킹까지 해주는 친절함을 보이고선 이내 자리를 뜬다. 펄럭이는 새하얀 가운만이 그 자리에 바람을 살짝 일으키고선 떠나버렸다. 근처 대학의 대학원생이라도 되는 것일까.

뜬금없이 훈수를 받은 셈이 되었지만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그냥 어벙벙한 감각이 더 강했다. 뒤늦게 스마트폰에 찍힌 마크를 확인하고선 그래도 첫 여행지 치고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도쿄.

여행지가 정해졌으니 남은 건 일정이구만.


도쿄의 첫 인상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하네다 공항에 내리고나서부터 느껴지는 것은 온통 사람, 사람, 사람이다. 서울도 사람이 많은 것으로는 지지 않을 정도라지만, 도쿄는 정말 살인적으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오자마자 깨닫게 되었다.

일본어를 배워 본 적도 없으니 주입받은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간신히 물어물어 호텔에 도착, 짐을 풀고 무작정 근처 관광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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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ortal:ritten ( 12 Oct 2020 1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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